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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80주기 추모식] 도산기념사업회 김재실 회장 추모사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18-03-14 14:13     조회 : 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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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모 식 사


  도산선생님을 숭모하시는 애국시민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민족의 위대한 스승이시며 영원한 지도자이신 島山 안창호 선생님의 80주기를 맞이하여 선생의 유택 앞에서 우리 모두의 뜻을 모아 선생의 위덕을 기리고 머리 숙여 명복을 빌기 위하여 여기에 모였습니다.

  島山 선생님은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시어 1938년 3월 10일 서울대 병원에서 서거하시기까지 60 평생을 망명과 옥고를 수차례 겪으면서도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번영을 위하여 헌신하신 애국자의 본보기셨으며 국가 지도자의 귀감이셨고 수양인의 사표였으며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에 빛을 비추신 겨레의 등불이셨습니다.

  선생의 인격과 교훈은 시대성을 초월하여 우리 속에 현존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 생존 시 동일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더욱이 우리 사회와 같이 지도자에 대한 추존보다는 탄핵이 더 심한 실정 하에서는 더 더욱 어려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살아계셨을 때에도 모든 사람들로부터 위대한 지도자로 존숭을 받으셨고 서거하신지 8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선생의 인격과 교훈은 우리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선생께서 남기신 족적은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각인되고 있음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島山선생은 민족의 먼 장래를 내다보시고 백 년 대계를 위하여 몸소 실천한 교육자이시기도 하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일생동안 세 개의 학교를 세우셨습니다. 이십대에는 강서에 점진학교를, 삼십대에는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우시고, 사십대에는 중국 남경에 동명학원을 건립하여 한국의 젊은이들을 양육하여 후에 항일투쟁과 민족부흥에 동량으로 준비하고자 하셨습니다.

  한편 이러한 정규교육기관을 통한 인재양성 뿐만 아니라 인격수련과 동맹훈련을 통한 평생교육으로 조국독립과 민족부흥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청년학우회, 흥사단, 수양동우회 등을 조직하기도 하셨습니다.

  島山선생의 수많은 업적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흥사단 창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민족이 부흥하려면 민족성을 먼저 개조하여야 한다는 확신 속에 1913년에 미주에서 팔도대표를 선정하여 흥사단을 만들었습니다. 민족의 번영은 민족성 개조에서부터 시작하고 민족성 개조는 국민 각자의 인격혁명과 자아혁신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선생의 확고부동한 신념으로 출발한 흥사단은 일제의 탄압은 물론 해방 후에도 찬바람 된서리를 맞으면서도 오늘날까지 백 년 동안을 연면 일관하게 명맥을 유지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 스며들어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島山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의 초석을 놓아 건국의 기초를 닦으셨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미주의 흥사단과 국민회의의 교포들로부터 2만 5천 달러의 거금을 모아 급거 상해에 도착하여 상해임시정부의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로 취임하시어 프랑스 조계에 정부청사 사무실을 정하고 정무를 보도록 하였으며 독립운동의 방략을 세우고 국내 연통제를 실시하고 북간도, 서간도, 러시아, 하와이, 미국 등 재외 다섯 지역의 단결을 유도하고 독립신문의 창간, 사료편찬위원회의 설립 등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당시 상해에는 수많은 독립운동 지사들이 모여 들었으나 지방적 파벌의식과 사상적 차이는 물론이고 많은 인물들이 소영웅주의에 빠져서 대립과 분열로 혼란스러웠으나 島山선생은 이러한 혼돈 속에서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인화를 도모하며 소통과 설득으로 통합을 이루고자 혼신의 노력을 하시어 그 당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내 한성임시정부, 러시아의 대한국민의회 등 세 곳의 임시정부를 통합하여 1919년 9월 도산선생 주도로 통합임시정부를 출범시키셨습니다. 통합임시정부는 도산선생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통합이 가능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항상 매사를 그러하셨듯이 「일은 내가 하고, 공적은 남에게로」돌리는 생활 철학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내 세움으로서 분열을 막고 통합을 이루어 내셨을 뿐만 아니라 「헤어질 수 없는 아내이거든 얼굴에 분이라도 발라서 데리고 살라」는 말씀으로 반대파를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는 리더십으로 끝까지 설득하여 대동단결을 이루는 선생의 숭고한 정신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큰 교훈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애제자이신 고 피천득 선생이 선생님에게 바친 헌시에서 “햇빛을 느끼고 사는 나무에 수액이 흐르듯이 저희 혈관에는 선생의 교훈이 흐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숭고하면서도 친밀감을 주고, 준엄하면서도 인자하셨습니다. 그 용모, 그 풍채, 그 음성, 정성으로 우리를 품 안에 안아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진실의 화신이었습니다.” 라고  선생님을 그리워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선생님의 서거 80주기를 맞아 선생님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고, 반목과 분열에서 벗어나 통합을 이루는데 진력하고, 국가적 난국을 애국심으로 극복하고, 무너져가는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데 진실의 화신으로 살아갈 것을 굳게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끝으로 국정으로 바쁘신 중에도 이 자리에 함께하여주신 피우진 국가보훈처 장관님과 강남갑구 국회의원이시며 저희 기념사업회 고문이신 이종구 의원님, 광복회 나중화 부회장님과 백범기념사업회 김형오 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단체장님 그리고 류종열 흥사단 이사장님과 단우 동지 여러분, 강남구청 공원녹지과 직원들과 강남구 주민들께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선생님의 영원한 안식과 명복을 비옵나이다.
   

2018. 3. 10.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회장 김재실 재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