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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식] 81주기 추모식 김재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장 추모식사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19-03-10 13:57     조회 : 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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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안창호 선생 순국 81주기 추모식

追 募 式 辭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 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도산선생이 옥중 심문 중 일본 관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은 도산선생이 서거하신지 81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날을 기억하시고 도산선생을 사랑하고 선생의 생애와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일요일 휴일인데도 불구하시고,

이 자리를 참석해 주신 애국시민 여러분께 도산기념사업회를 대표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별히 국정에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피우진 국가보훈처 장관님을 대신하여 참석하신 이병구차장님과 오진영 서울청장님, 그리고 박유철 광복회장님과 백범김구선생 기념사업회 김형오회장님, 몽양 여운형선생 기념사업회 이부영회장님을 비롯한 보훈단체 대표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기념사업회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정순균 강남구청장님과 도산선생이 16세부터 18세까지 신 학문을 수학하셨던 언더우드학교의 후신인 연세대학교를 대표하여 참석하신  정창영 전 연세대학교 총장님과 순흥안씨를 대표하여 약전봉독을 해주신 안명옥 17대 국회의원이시며 도산기념사업회 이사님에게도 감사드리며 또한 흥사단 단우동지 여러분들게 감사드립니다.

금년은 3,1운동 100주년, 상해임시정부수립 100주년으로 되는 해로 우리 민족사에 아주 뜻깊은 해입니다.
무엇보다도  도산선생께서는 100년전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셨으며 그 초석을 놓으셨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도산선생은 미국에서 이 소식을 듣고 바로 3월 15일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으로 미주, 하와이, 멕시코에 체류하는 동표 전체 대표회의를 열고 항구적인 독립운동방침을 천명하셨으며 급거 보좌진 2명 (정인과 황진남)을 대동하고 호주와 홍콩을 거처 5월 25일 상행 도착하셨습니다.

상해에 도착한 선생을 우선 미주 흥사단과 국민회로부터 모금하여 가지고 온 2만 5천달러로 프랑스조계 하비로에 정부청사 사무실을 정하고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서리로 취임하여 정무를 총괄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언론을 중요시 하여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운동 방략으로 6대사업(군사, 외교, 교육, 사법, 재정, 통일방략)을 제정하여 독립운동의 방향을 세웠으며  역사기록을 소중히 하여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를 설치하고 일본의 폭정과 민족운동의 역사자료를 기록하도록 하였고
연통제실시로 임시정부와 국내 각 지방과 비밀 연락망을 구축하여 민중운동을 일으킬 준비를 하셨으며 재외 5지역(북간도, 서간도, 시베리아, 미주, 하와이)의 단결을 진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도산선생께서는 한성임시정부, 블라디보스톡 대한국민회의, 상해임시정부로 흩어져 있는  3개의 임시정부를 통합하는 일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6월부터 8월까지 혼신의 노력을 하신 끝에  드디어 9월 11일에 “통합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여  대통령에 이승만, 국무총리에 이동휘선생을 추대하고 자신은 말직인 노동국총판(지금의 차관급)으로 내려 앉으셨습니다.

 도산선생은 대동단결을 위하여 자기자신보다는 공을 앞세우는 公無和의 정신은 통합통일을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셨기 때문에  통합임시정부 수립이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도산선생의 통일 통합의 리더십은 오늘날 남북한으로 분단되어 있고 국내적으로는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같이  100년전 수립한 상해임시정부는 그후 김구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활약으로 27년간 지속되어 왔던 것입니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도산선생께서 1932년 4월 26일 윤봉길의사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 압송되지 않으셨더라면 그렇게도 몽매에도 그리던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셨을 것이고 해방 후 남북이 갈라지는 역사도 없었을 것이라고 우리는 굳게 믿기에 지금도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아쉽습니다. 도산선생님~~~
영면하시옵소서!
삼가 명복을 비옵나이다.


2019.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