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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에 돌아보는 도산 안창호 선생-퍼온글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6-10-31 15:21     조회 : 9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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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주년을 맞은 올 해 8월은 그 어느 8월보다 더 의미깊고 가슴 뜨거운 마음이 용솟음치는 달이다. 특히 여름방학을 맞아 광복60주년 기념 청소년,대학생 행사들이 다채롭게 전개되고 있음을 보아도 그 열기를 알 수 있는데 가만보면 정작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과 선열들에 대한 선양 사업들은 상대적으로 너무 외소한 듯 보인다.     


광복 60주년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행사가 전개되는 것을 누가 뭐라 하겠냐마는 그것이 본질이 전도된 채 형식과 겉치레에 치중되는 것은 경계하였음 하는 것이 그리 엉뚱한 걱정은 아닐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국가보훈처가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도산 안창호 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발표한 것을 우리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1878. 11. 9~1938. 3. 10)은 평남 강서군에서 출생, 한학을 배우다가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깨달은 바 있어 1895년 상경, 구세학당(救世學堂)에 들어가 신학문을 배운다. 1897년에는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평양에 지부를 설치하기 위한 만민공동회에서 그 유명한 쾌재정(快哉亭)연설로 대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종교지도자이며 교육자인 남강 이승훈(李昇薰)이 이 연설에 감명을 받고 독립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하니 그 연설이 당시 민중들에게 얼마나 갚은 영향을 주었는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그후 1907년 29세 때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09년에 청년학우회, 1912년 대한인 국민회, 1913년에 흥사단, 1928년에 한국 독립당을 조직한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본격적인 반일 투쟁을 위해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결성하려던 도산 선생은 이듬해 일경에 의해 체포되어 국내로 끌려왔으며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른 끝에 결국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38년 3월 10일 세상을 떠난다.




사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업적을 이야기하고자 들면 너무나 많아 난감할 지경이다. 대구에 태극서관(太極書館)을 세워 출판사업을 전개하는가 하면, 평양에 자기회사를 세우고 대성학교를 세워 민족의 지도자 양성을 위한 일에 헌신한 일, 1913년에 흥사단을 창립하고 3·1운동 직후 중국 상해로 가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총장·국무총리대리·노동총장 등을 역임하면서 민족의 해방을 위해 노력한 일, 1926년에는 만주일대를 답사하며 이상촌 건설을 추진하고 1931년에는 흥사단보(興士團報)를 발행해 민족의 부흥과 발전을 위한 국민의 자질혁신과 청년인재 양성 등 흥사단 이념구현에 주력한 일등등은 아주 일부분의 일이다.



선생의 기본사상은 《민족개조론(民族改造論)》인데 그의 제자인 이광수가 일제말 친일에 가담하면서 상당부분 선생의 민족개조론이 잘못 왜곡되게 되었고 안창호의 독립운동 노선이 매우 나약한 측면으로 비춰지게 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근간으로 하는 선생의 흥사단 정신은 대한민국 근대사에 많은 영향을 국민들에게 주었으며 21세기 시민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NGO지도자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도산 선생은 말 그대로 오로지 나라와 겨레를 위한 삶을 살았다. 도산의 60평생 가운데 그 전반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두어졌으며, 후반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싸움에 바쳐졌다.

"개인은 제 민족을 위해 일함으로 인류와 하늘에 대한 의무를 다한다"라고 애국 애족적인 인생관을 밝힌 바 있는 도산은 실제로 평생을 자신과 가정의 편안함을 돌볼 겨를도 없이 오로지 위기에 처한 나라와 겨레를 구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다. 그리하여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독립을 위해" 노력하다가 마침내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른 끝에 타계하였던 것이다. 말로써가 아니라 몸으로 직접 앞장 서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준 진정한 애국적 지도자였다.

도산이 세상을 떠난 지 이미 반세기가 지났다. 하지만 도산은 아직도 완전히 과거 인물만은 아니다. 그의 독립운동 업적은 과거의 일이라고 쳐도 그의 인격과 사상은 아직도 우리에게 살아 있는 유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광복 60주년을 맞은 우리가 진정으로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길은 당시에 초야와 같이 목숨을 버렸던 여러 애국적 지도자들과 이름없는 민중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돌아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러한 시각에서 8월의 독립운동가이자 광복60주년의 민족지도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을 한번쯤 마음속에 심어보는 것도 8월을 맞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멋진 모습이지 않을까?



2005. 8. 9 / Columnist. Young il, LEE



칼럼니스트 이영일

경희대학교NGO대학원 NGO POLICY 전공 석사과정중이며 중앙일보 디지털 국회, ohmynews, 국정넷포터 등 사이버 언론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과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실무위원, 도박산업 규제및개선을 위한 전국네트워크 집행위원 등 다양한 NGO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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