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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질문이 있습니다. 꼭 답변 부탁드려요.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10-08-06 13:29     조회 : 8611    
(게시판 성격에 따라 문의게시판으로 글이 이동하였으니 이 점 양해 바랍니다.)

문의 주신 사항 잘 보았습니다.
윤치호 일기 1933년 10월 4일자 내용에 근거하여 도산선생과 몽양선생으로 대표되는 서북과 기호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지역감정 대립’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판단의 준거가 되는 자료에 먼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윤치호는 1906년 장지연(張志淵) 등과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를 조직, 회장이 되었으며 교육사업에 힘쓴 독립운동가입니다. 1907년 안창호, 양기탁, 이동휘 등과 함께 신민회(新民會)를 설립하여 국민 계몽운동에 헌신하기도 했고, 1910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을 조직한 후 안창호가 설립한 대성학교(大成學校) 교장으로 재직하던 중 1911년 105인사건으로 6년형을 선고받았다가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출소한 이후 친일파로 변절하여 조선총독부 일간지인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고 중일전쟁에 청년들이 자원입대할 것을 호소한 인물입니다. 그는 이 공로로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의원을 지냈으며 그의 부친은 남작의 작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윤치호일기에 나타난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친일적 성향을 가진 인물인 만큼 그 내용은 왜곡되고 굴절되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당시 일제가 독립운동세력의 지역성․파벌성․분열성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시킨 식민지 근대화론이 이 자료에 용해되어 있다고 판단됩니다.
도산선생은 1878년 평안남도 강서, 몽양선생은 1886년 경기도 양평 출신입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도산선생을 중심으로한 서북지역 출신 인사들과 몽양선생을 비롯한 경기도 출신 인사들이 많았는데, 이를 소위 ‘당파싸움’으로 몰아가려는 친일세력의 의도가 다분히 담겨있는 대목이 아닌가 판단됩니다.
더구나 도산선생이 1933년 당시 투옥중이었고, 몽양선생 또한 1929년 제령(制令)위반죄로 3년간 복역하고 1933년에야 출옥하셨으니 이같은 정쟁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여겨집니다. 도산선생과 몽양선생은 지역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애써 오신 분들입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 유필규님이 답변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