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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마포 '옛 경성형무소' 식민지역사관 건립해야
  글쓴이 : 정병기     날짜 : 12-05-10 08:23     조회 : 4528    
일제강점기 마포 '옛 경성형무소' 식민지역사관 건립해야

 

일제강점기 식민지 통치의 상징던 악명높던 경성형무소 역사관 건립해야


선조의 당시 독립운동 관련자료 찾기가 당시 독립운동하기 보다 어려운 현실이라면 누가 믿겠나? 그러나 사실이고 현실이다.

애국선열의 민족과 나라사랑하는 호령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며,일제 식민지통치의 상징인 마포 경성형무소 진정한 독립성지 되어야 나라위해 희생한 무명의 미발굴독립유공자를 위한 진정한 모습이며 정부는 경성형무소의 존재가치에 대한 역사적인식을 바로잡고 역사속에 묻히거나 잃어버리거나 버림받고 소외받는 애국이 되지않게 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3.1절 ,8.15 광복절만 일회상행사가 아닌 진정한 민족독립의 기쁨과 아픔을 온국민과 함께 기억하고 교훈삼는 행사가 돼야 한다. 이날을 위해 우리 선조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잃어 가면서까지 만세를 부르고 모진 고문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 강토 그 어느곳인들 독립을 위해 피 흘렸던 역사가 스며있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지금은 잊혀져 가고 있는 이 장소만큼은 그 의미를 다시 되새겨야만 하는 한 장소가 있다.

 

바로 역사의 현장으로 독립투사들에게 악명 높았던 마포 경성형무소다. 지금은 그 자취조차 찾아 보기 힘들정도로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지고 있지만 바로 이곳이 독립에 몸바쳤던 수 많은 이들의 피울음이 새겨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과 검찰청 자리잡은 '경성형무소'옛자취인 표지석만이 이자리가 일제강점기 나라와 민족을 위해 투쟁하고 목숨을 받친 항일운동의 중심이고 역사의 현장이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지키고 있다.

 

경성형무소 옥사자 대부분 독립운동가에서 제외된 현실,미발굴상태로 잊혀지고 버림받고 있다. 역대정권들은 목소리와 구호는 요란했지만 별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본다. 진정한 독립운가 집안은 독립운동으로 집안 일제의 모진 고문과 탄압으로 풍비박산, 후손들은 뿔뿔이 흩어져 머슴살이 전전, 산전수전 개고생, 가난달고 살고 배움에 길에서 멀어져 조상의 민족독립운동이 가슴에 한이 된 현실, 잊혀지거나 일허버린 애국으로 역사속에 묻혀져 가고 있어 안타깝다.

 

마포구 공덕리 105번지 경성형무소 자리에는 현재는 서울서부 지방법원ㆍ검찰청이 들어서 있지만, 당초 한일병합 조약 체결전인 1908년 서울 서대문구에 지어졌던 '경성감옥'이 수용공간이 적어지자 이곳 마포구 공덕동에 지은 후 1923년부터는 '경성형무소'로 이름을 바꾸어 불렀었다. 경성형무소는 일제 강점기 동안 대전형무소와 함께 무기수나 장기 수형자를 수용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김일성 주석의 숙부인 김형권이 옥사한 곳이기도 하다. 저의 증조부 또한 이곳에서 4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지난 1928년 5월 20일 이었다. 이런 중요한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것이 현실, 정부가 인식 바꾸게 해고 영원히 정부가 책임져는 풍토돼야 할 것이다.국가보훈정책은 정권의 교체나 시대나 환경의 흐름에 불변사항이 돼야 한다.

 

경성형무소를 자취도 없게 철거한 후 공공기관을 건축하였다는 것은 지난 정권들의 역사의식의 부재이고 무능의 소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어떻게 해야 아픈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 발전의 동력으로 승화 시킬 수 있까? 바로 이곳 경성형무소 자리 옆에라도 '경성형무소 식민지 역사관'을 건립함으로서 그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어떤가 한다. 비록 민족의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운 역사라 할지라도 일정 규모라도 복원해 전시함으로서 이를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물려줘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됨으로서 현재 표지석 하나 달랑 있는 문제점을 극복하고 산 체험의 장이 되어 다시는 외세에 짓밟히거나 수모를 당하는 일이 없게끔 교훈 삼는 역사의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이를 통해 우리 미래 세대들은 과거의 진실한 역사를 통하여 나라사랑 정신을 본받게 되고 애국정신의 근본이 될 것이라 점 때문이다. 아울러 이를 계기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치고도 잊혀지거나 역사속에 묻혀가고 있는 미발굴독립유공자가 없게끔 정부는 자료발굴과 그 명예를 찾아 주는데 머뭇거리거나 주저하지 말고 앞장서야 한다고 본다.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현재를 위해 그리고 먼 미래를 위해 반드시 기록되고 기억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국가가 해야 할일은 시간이 흘러도 반드시 한다는 교훈을 남기기를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광복 66주년을 맞은 오늘, 국가보훈과 나라사랑에 대한 국가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재인식하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국민은 국가가 반드시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책임 진다는 풍토가 국민 마음속에 확고하게 정착되기를 바란다. 정병기<미발굴독립유공자 후손>

 

알림/증손자 증조부 독립운동 지료 증명하려 지난 36년 고군분투,정병기님은 미발굴독립유공자 후손자로 국가유공자 입니다. 지난 36년간 증조부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발굴 위해 고군부투, 증조부 서훈신청,관련기사 각 언론사인 연합뉴스,매일경제신문, 서울신문, kbs1 시청자칼럼 2회출연 등 각종 언론 보도를 통해 사연이 알려져 있으나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경성형무소 관려자료 발굴과 옥사자 서훈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성형무소 역사관 건립을 위해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건의하며 노력중에 있습니다. 정용선선생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도심리 391번지가 본적지이며 이곳을 중심으로 춘양 법전 영주,안동 울진 등 다양한 곳에서 독립운동을 전개 중 일경에 체포 옥사, 가족들은 모진감시와 탄압으로 개고생, 가난은 대물림되고 있다. 명예를 찾아주고 후손들은 대우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파일첨부 마포 경성형무소 터 표지석 . 관련 사진 정병기 제공

 

미발굴독립유공자 정용선선생에 대한 사연입니다.

 

증손자 증조부 독립운동 명예 찾으려 지난 36년 고군분투
정용선 증조부께서는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으로 군자금모급운동을 하시다 체로 마포 공덕리 105번지 악명높던 일제식민지통치의 상징인 경성형무소에서 모진 탄압과 고문 그리고 굶주림과 강제노역으로 시달리시다 41세로 1928.5.20.옥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작도 옥시기록 담긴 제정호적 제출해도 거증자료 부족리라며 미루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제사연을 꼭 대통령님과 청와대 관계자분들이 보시고 증손자의 바램이 이루어지고 자손된 도리를 할수 잇게 도움을 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리며, 저의 애절하고 절박한 사연에 대하여 알려드리오니 한번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증조부를 비롯하여 4대가 국가를 위해 희생했습니다.

저는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항일독립운동으로 군자금 및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체포되어 경성형무소에서 41세(1928년5월20일 오후3시15분/제정호적에 일제가 기록하였습니다.)에 젊은 나이에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보시지 못하고 옥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서훈을 받지 못한체 잊혀진 명예가 되어버렸답니다. 저는 증손자로서 지난 36년 세월을 증조부 독립운동 관련 자료발굴에 나섰지만 많은 자료가 소실되거나 정부의 관리부실 그리고 관보를 지시하여 소각되었답니다. 이런 사연에 대하여 이번에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회에 400여장의 증거자료와 소장을 내어 억울한 일을 해결하여 달라고 행정심판을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제기했답니다. 한번 꼭 관심 가져 주시길 바랍니다.행정심판 접수일/2009.8.28. 접수번호 행심-2940 소장 포함 400페이지 분량/동영상자료(kbs1 tv 시청자칼럼)포함

 

존경하는 김 양 국가보훈처장님께

 

국가보훈처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까지 36년이 넘게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젊음을 받치며 투쟁하시다 체포되어 1928년5월20일 오후3시15분 경성형무소에서 병사하신 정용선 선생인 증조부님에 대한 자료발굴 노력을 해왔으며 독립유공자 신청을 해 보았지만 거증자료 미비로 미루어온지 벌써 20여년이 다가오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하며 안타까운 사연들이 연합뉴스, 매일경제신문, 서울신문, 브레이크뉴스 등에 보도되고 심지어는 kbs1 시청자칼럼에 출연하여 호소하여 보았지만 아직도 잊혀진 명예를 찾기가 너무나 어려워 눈물로 세우러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악명높던 경성형무소에 관련한 자료가 매우 부족하고 그에 대한 연구도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관련자료 찾기는 너무나 어려운 현실입니다. 저는 이번에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회에 이 억울한 사연을 알려 행정처분을 받아 보기로 결심하고 모든 자료를 정리하여 제출 접수하였답니다.

[kbs1 tv 시청자칼럼 출연] 독립운동가 기록찾기 30년./억울한 사연 행정심판청구
작성일: 2009/08/29 AM 04:06
작성자: 정병기(jbg1219)

[kbs1 tv] 독립운동가 기록찾기 30년의 노력 /출연 정병기


방송일: 20080814 /동영상/억울한 사연 국가보훈처 상대 행정심판 청구

우리들세상/시청자칼럼/다시보기 가능합니다.(출연자/정병기) highSpeedVod(1539806);
시청자칼럼.우리사는세상에서 그 결과를 지켜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억울한 세상이 없는 살기좋은 대한민국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모든 거슬 버리고 조국에 받치신 애국선열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을 가져야 하며, 또 그들의 후손드리 잊혀진 선조의 명예를 찾을수 있게 협조하고 그렇게 돼야합니다.

 

서울에 사는 정병기씨는 정씨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시다 옥사하셨지만 근거자료가 부족해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씨는 근거를 찾기 위해 30년째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정씨는 증조부의 독립운동을 증명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독립운동가에 대한 증빙자료 발굴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호소한다.

 

시청자칼럼에 출연했으나 아직까지 인정하지 않아 결과를 얻지 못한 억울한 사연을 국무총리실 산하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습니다.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며 답답하답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문서가 없어지고 소각된 사유는 정부의 귀책사유인데도 인정하지 않고 변하지 않은 국가보훈처의 잘못된 관행과 고정관념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지난 30년 세월을 증조부 독립운동 자료 발굴을 위해 노력했지만 국가보훈처가 인정하지않아 억울한 사연을 행정심판청구를 통하여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국무총리실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제기했습니다. 소장을 포함한 서류 400여장 분량에 관련 동영상 자료(2008.8.14. kbs1 시청자칼럼) 소장에서 항일운동으로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던 중 병사로 독립유공자를 인정하여 잊혀진 명예를 회복시켜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습니다.

 

이제 국가보훈처인 피청구인과 청구인간에 열띤 공방이 전개 될 것입니다. 아마도 정부의 독립운동 관련 서류가 영구보존문서임에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귀책사유가 도마위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방송관계자분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의 많은 협조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선조의 훌륭한 "독립운동 자료 찾기가 독립운동하기 보다 어려워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애국선열과 호국영령 그리고 그 후손들이 대우받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며, 지난 30년이상을 증조부의 잊혀진 명예를 바로 세우고자 한 노력이 헛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존경하는 국가보훈처장님

후손들이 선조의 훌륭한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찾기가 독립운동 하기 보다 어려운 현실이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선조의 잊혀진 명예를 찾을수 있게 한번 더 검토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경성형무소에서 사만하셨어도 시신도 인도받지 못한 채 증조할머니 묘소에 비석만 세워놓아 하루속히 잊혀진 명예를 찾아 국립묘지에 가묘라도 모셔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마땅히 후손이 해야 할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지난 36년세월이 증조부님의 명에를 찾는데 기여하게 된다면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집안은 증조모님 독립운동으로 풍비박산이 되고 일제의 혹독한 감시와 박해로 집안이 흩어지고 머슴살이 전전하거나 처거살이로 살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부친도 배움이 없는 (문맹인)무학이시고 저역시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이며 부친도 이번에 50년만에 국가유공자 신체검사를 받고 잇으며 저의 아들도 의경으로 입대하여 평택집회현장에서 진압근무 중 다쳐 제대를 하였답니다. 저말 위로 보나 아래로 보나 국가에 충성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 평범한 국민이랍니다. 다시한번 정용선 선생에 대하여 철저한 조사와 검토가 이루어져 잊혀진 명에가 반드시 찾아질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미발굴독립유공자 정용선의 증손자 정병기

 

덧글/일제겅점기 식민지통치의 사징이였던 악명 높던 마포공덕리 경성형무소 역사적 자료발굴과 역사관 건립을 정부가 앞장서 서둘러야 합니다.이곳이 진정한 민족독립의 성지이며 역사의 현장입니다. 이제 현정부가 이문제만은 풀고 가야한다고 본다.나라위한 고귀하고 숭고한 희생은 정부가 책임지는 풍토가 조성돼야한다. 정용선의 증손자 36년 증조부님의 명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꼭 당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