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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5월 시베리아에서 미주를 향해 출발한 도산은 페테르스부르크, 독일, 영국을 거쳐 대서양을 건너 그 해 9월 2일 미국 뉴욕항에 도착하였다.

도산이 없는 동안 <국민회>는 1910년 5월에 하와이 한인단체와 통합하여 <대한인국민회>로 발전하고 있었다. 도산은 1912년 2월 해외 한인사회를 조직적으로 통합하여 한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이익을 증진시킬 중추기관으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발족하였다. 중앙총회장에 선출된 도산은 북미는 물론 하와이, 멕시코, 쿠바, 만주, 시베리아 등지의 지방총회를 지휘하며 민족운동을 지도하였다.

한편 대한인국민회는 기관지 《신한민보(新韓民報)》를 간행하여 일제에 의해 억압된 민족언론을 되살리는 동시에, 언론을 통해 항일민족운동을 주도하였다.

멕시코 교민들의 요구로 기념엽서 제작을 위해 찍은 사진

대한인국민회는 미국무성과 캘리포니아주 정부로부터 자치단체의 자격과 권위를 인정받아 한인사회의 자치와 권익을 신장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유학생과 망명 애국지사들은 여행권을 갖지 않고도 대한인국민회의 보증으로 입국이 가능하였고 영주권을 발급 받을 수 있었다.

1915년에는 클래어몬트 한인국어학교(학생양성소)를 발전시켜, 한인 2세에게 잊혀져 가는 모국어를 교육하여 한인들의 민족의식을 계승·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1917년 1월 대한인국민회 동지들과 함께 <북미실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우선 농업경영에 착수하여 민족기업을 일으키는 한편, 국제무역에서 신용거래를 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나, 불행히도 1927년에 파산하고 말았다.

1917년 6월부터 12월까지는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의 이승만과 박용만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하와이를 방문하고 교민사회의 단결을 호소하였다. 그리고 대한인국민회는 뉴욕에서 개최되는 <소약소국동맹회>에 박용만을 대표로 참석케 하여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에 한국 독립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1918년에는 멕시코 한인들의 초청을 받아 멕시코를 방문하였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급한 임금으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멕시코 한인동포사회를 통합시키고, 학교 및 실업회사 설립 등을 독려한 뒤 미국으로 귀환하였다.

1913년 5월 13일 도산은 샌프란시스코 페리스트리트에 있는 강영소의 집에서 8도 대표를 비롯한 흥사단 목적에 찬동한 동지들과 흥사단을 창립하였다.

흥사단의 목적은 약법 2조에 명시되었듯이 “본 단의 목적은 무실역행으로 생명을 삼는 충의남녀를 단합하여 정의를 돈수하고, 지·덕·체 3육을 동맹수련하여 건전한 인격을 작성하고 신성한 단결을 조성하여 우리 민족전도 대업의 기초를 준비”함에 있었다.

도산은 흥사단 창립을 “우리 민족이 완전히 부흥하여 생존번영을 누리고 나아가서 전체 인류사회의 공존공영에 공헌을 짓는 대사명을 달성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흥사단의 주의 주장이다”라고 할 정도로 흥사단을 중시하였다. 흔히 흥사단운동은 수양단체 및 운동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흥사단운동은 도산의 목표가 아닌 완전 독립을 쟁취하여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초운동이었으며, 도산은 흥사단운동에 큰 애정과 신념을 가졌다.

도산이 흥사단을 처음 구상할 때 작성한 메모에서 볼 수 있듯이 흥사단 운동은 독립운동과 독립국가 건설의 대업까지를 염두에 둔 운동이다. 흥사단운동은 독립운동의 기초단계운동이며 준비단계운동으로 인내·용감·충의·신애의 정신을 갖고 민족의 대동단결을 위한 행동통일·직무분담·주의일치를 하여 독립운동의 기초를 준비한다. 그리고 독립운동의 준비단계를 진행준비단계와 완전준비단계로 나누어, 먼저 진행준비단계에서 인재양성과 재정확보를 이루어야 한다. 그 다음 인재와 재정이 투입되어 완전준비단계에서는 독립군·장관·정치가·공학가·의원·실업가·학술가 등 인재들이 독립전쟁 수행에 필요한 각자의 직무에 충실하고, 확보된 재정으로 군기·군제·군량·건설비·외교비에 투하한다는 구상이다.

그리고 결과단계도 진행결과단계와 완전결과단계로 구분하여, 진행결과단계에서는 일제와 독립전쟁을 전개하고 독립전쟁을 지휘할 지도조직으로 신정체 조직을 구상하였다. 그 정체조직이 정부인지, 정당인지, 어떠한 형태의 조직인지는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그리고 독립전쟁의 결과를 완전한 것으로 보지 않고, 한 단계 위의 완전결과단계를 설정하고 있는데, 이는 독립된 조국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도산의 비전은 광복 후 조국의 증진·발전까지를 전망함으로써 우리 민족독립운동이 완수된다는 것이었다.

흥사단은 도산의 뛰어난 조직력으로 여러 지역에 단원들을 확보하고, 발전을 거듭하였고, 광복 이후인 1948년 흥사단 본부를 서울로 이전하여 활동하고 있다.

 
1912년 중국, 손문(孫文) 임시대통령에 취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916년 경복궁터에 총독부 청사건물 기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