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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세기 말, 서양세력 해외진출의 성격
2. 1885년 3월 1일, 영국 군함-거문도 점령
3. 1894년 7월 1일, 청.일전쟁 발발
4. 1895년 4월 23일, 러.불.독 3국 간섭
5. 1896년 1월 15일, 제1회 근대올림픽 개최
6. 세계는 지금-과학기술 혁명의 시대
7. 1900년 5월, 중국-의화단 북경 장악
 
19세기 말에 이루어진 서양세력의 해외진출은 이전에 서양의 배들이 동양에 나타난 것과는 크게 다르다.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때는 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상선들이 지리상의 발견과 함께 동양에 나타났다. 이들은 단순히 장사를 하기 위해서 동양에 온 것으로 그 덕택에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조총으로 무장하였고 우리나라에 담배와 고추가 들어왔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이들의 출현은 위협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18세기에 이르러 자본주의 경제의 팽창과 함께 유럽은 세계로 진출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세계를 원료공급지이면서 동시에 상품시장으로 예속하기 위해 이들 지역을 정치적인 식민지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이것을 제국주의라고 하며 19세기의 서양 각국이 앞다투어 동양에 진출하기 위해 경쟁하며 때로 전쟁도 불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제국주의적 침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태평양, 인도와 동남아시아는 이미 이들 서양 각국의 식민지로 분할이 완료됐으며 이제 남은 것은 극동밖에 없는 형세이기 때문에 앞으로 국제정치의 초점이 극동에 맞추어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그리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1885년 4월부터 약 2년간 영국의 동양 함대가 전라 남도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였다. 1860년 블라디보스토크를 점령한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는 기미가 보이자 러시아와 맞서 있던 영국 함대가 거문도를 점령하고 영국기를 게양했다. 청국의 이홍장이 청국 주재 러시아 공사로부터 러시아는 한국의 영토를 어느 지점도 점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영국에 통보함으로써, 1887년 2월 영국 함대는 거문도에서 철수하였다. 이번 거문도사건은 우리 자신의 이해와 아무런 관련없이 열강간 대립의 산물로 일어났다는 데 문제가 있으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 정부가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중재역할을 한 청나라의 입김이 조선내에서 더욱 거세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향후 제국주의 열강의 조선에 대한 침략과 간섭이 더욱 거세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과 청 양국이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발령, 전쟁상태에 돌입했다. 지난 농민 봉기로 우리 정부가 청에 지원군을 요청하여 청의 군대가 움직이자 텐진 조약을 빌미로 일본 역시 군대를 출병시킨 것. 결국 1894년 8월 16일에 일본군이 평양에 주둔하고 있는 청군에 대한 전면공격을 감행하고 작전개시 24시간만에 청군을 대파하고 평양을 점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어 18일에는 해군 역시 황해상에서 청국 함대를 격파해 제해권을 장악하고 조선에서 청군을 완전 축출하는데 성공했다. 1895년 4월 17일,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일. 청 양국 전권대사 이토와 이홍장이 강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청. 일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확인되었으며 조약에 따르면 청은 요동반도를 일본에게 할양하고 2억냥의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1895년 4월 23일 러시아, 프랑스, 독일 3국이 청의 요구로 일본의 요동반도 할양에 반대하는 권고를 내자 이에 일본이 굴복했다. 요동반도는 청. 일 전쟁의 종전합의에 따라 일본과 청이 지난 4월 17일 체결한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일본에게 할양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청의 이홍장이 조약 서명 후 러시아에 조약 철회를 위해 노력해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러시아는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프랑스, 독일과 함께 요동반도를 되돌려 줄 것을 결의하게 된 것이다. 이는 일본의 세력확장에 제동을 걸고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 한 3국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삼국간섭에 의해서 아시아에서는 러시아의 힘이 강화되고 조선에서도 러시아와 연대하여 일본에 대항하려는 세력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1896년 제 1회 근대올림픽이 열린 곳.말 발굽 모양의 트랙과 5만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이며, 좌석은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1896년 4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13개국 311명의 선수가 참여한 가운데 제1회 근대올림픽 대회가 열렸다. 올림픽 대회는 기원전 776년 그리스에서 시작된 이래 1200년 가량 지속되다가 서기 393년 로마의 테오도시우스에 의해 폐지되었다가 이번에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의 노력에 의해서 부활했다. 고대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육상경기를 주로 하며 펜싱, 사격, 테니스 등의 종목들을 포함하여 총 10개 종목을 치웠다고 한다.

1889년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혁명 1백주년을 기념하는 만국박람회가 열려 현재 유럽 각국에서 산업혁명의 여파가 어떻게 인간생활의 모든 면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다. 먼저 과학기술혁명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동차의 발명이 눈길을 끈다. 독일의 벤츠와 다임러가 1885년에 만드는데 성공한 것으로 가솔린을 연료로 하는 내연기관을 발명하고 이것을 마차를 약간 개량한 2륜차와 3륜차에 장착하고 특허를 얻어내었다. 또 다른 교통수단으로 1879년 독일의 지멘즈가 전기로 운행하는 전차를 개발한 일도 있다. 통신 영역에 있어서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1874년 에디슨이 4중회로 방식을 개발하여 한번에 2개씩 양 방향으로 총 4개의 전문을 동시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에디슨이 1876년 발명한 소리를 저장할 수 있는 축음기와 활동사진을 가능케 한 영사기도 문화적 충격을 던지는데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또 미국의 벨이 특허를 따낸 전화의 경우도 급속하게 일반화 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반외세, 애국 운동이 일어나 동북아 정세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술변볍이 실패한 후, 사실상 반식민지 상태에 빠져있던 중국에서 농민들에 의해 장렬한 반제애국 운동인 의화단 운동이 일어났다. 그들의 구호는 '부청멸양(청나라를 도와 서양세력을 물리친다.)' 로서 사실상 국가를 보위하고 침략자를 물리친다는 뜻이다. 의화단은 도처에서 교회를 공격, 서양 선교사들을 처단하여 외국 열강들이 중국을 마음대로 멸시하고 약탈하는데 대한 중국 국민들의 분노를 표출하였다. 결국 이것은 서구 열강 8개국 연합군이 개입해 사태가 수습되었다. 3국간섭으로 중국대륙과 조선에서 기세가 한풀 꺾였던 일본은 이번 기회를 전세 역전의 기회로 삼아 8개국 연합군을 적극 조직하였고 연합군 병력의 3분의 1의 병력을 파병하였다. 결국 일본은 중국에 대한 일정한 발언권과 진출기반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세 변화는 그 외의 열강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러. 불. 독을 한편으로 하고 영.일.미를 다른 한편으로 하는 세력 갈등관계가 형성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