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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1년 9월 18일 일제의 만주침공
2. 1932년 윤봉길, 홍구공원서 폭탄 투척
3. 1936년 손기정, 마라톤 '세계재패'-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 수립

4. 1940년 2월 11일 일제 창씨개명 강요

5.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물결-일본 무조건 항복

 
1931년 9월 18일 반 11시경 일본군은 북대영 부근에 있는 유조구철교가 폭파된 것을 기화로 만주전역을 점령하는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펑톈 주둔 일본 관동군은 철교 폭파를 중국군 소행으로 간주하고 각지에서 일제히 공격을 가하여 19일에는 펑톈성 일대를 점령했다. 한국 주둔 일본군도 즉시 행동을 취해 압록강을 건너 불과 5일 만에 펑톈, 지린 두 성의 주요 지역이 일본군의 손에 들어갔다. 이러한 일제의 만주침략은 공황으로 인한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만주시장을 독점적으로 확보함과 동시에 장차 대륙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로 만주를 사용하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륙진출의 길목인 한반도에 대한 군국주의적 통제가 대폭 강화되고 만주에서 전개되고 있는 한국민의 독립운동에 직접적인 탄압이 강도를 더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1932년 4월 29일 한국인 청년 윤봉길이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황생일과 상해사변 승리를 자축하는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군사령관 시라카와대장 등 10여 명이 죽거나 크게 다쳐 상해 일대가 발칵 뒤집혔다. 윤봉길은 김구가 이끄는 한인애국단 단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인애국단은 지난 1월 이봉창의 일황저격사건에 이어 이번 사건을 일으켜 내외로부터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연이어 폭탄테러를 당한 일본은 내심 당황하고 있다는 후문이며 현지의 일본계 신문들도 '흉악한 사건' 이라고 분노와 충격을 표현했으나 상해사변에 분개하고 있던 중국인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군에게 체포돼 가는 윤봉길 의사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 수립

 
시상대의 손기정 선수 가슴의 선명한 일장기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 후에 동아일보가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삭제하고 기사를 내보내 무기한 간행처분을 받기도 했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11회 올림픽 마라톤 경이에서 우리나라의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가 각각 1등과 3등을 차지해 마라톤을 제패했다. 손기정 선수의 기록은 2시간 29분 19초 2로 종전의 세계기록을 무려 2분 16초 8이나 앞당긴 것이다. 손기정 선수는 반환점을 돌면서 무섭게 속도를 냈는데 경기 후 한 기자가 그 비결을 묻자 "인간의 육체란 의지와 정신에 따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불가능한 일을 하게 한다" 고 말했다. 외국인들이야 무심코 듣고 흘려보냈겠지만 우리 민족에게 그가 말한 "의지와 정신"은 '독립을 향한' 의지와 정신으로 해석돼 국민들을 더욱 뿌듯하게 하고 있다.

창씨개명을 위해 호적과에 줄 서있는 모습
1940년 총독부는 전시체제 구축을 위한 황국신민화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인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있다. 이번 조치에 대해 미나미총독은 '창씨개명을 통해 법률상 일본인과 같은 방식으로 씨(氏)를 부를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내선일체 구현의 길' 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가통을 중시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 때문에 심각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총독부는 한국인들에게 성과 이름을 일본인처럼 바꿔서 8월 10일까지 제출하도록 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외면상으로는 자유의사에 따르도록 하고 있지만 이 조치에 따르지 않으면 학교에 진학할 수 없고 관공서에 채용되지도 못하며 현직자도 파면된다. 또 각 행정기관은 사무처리를 거부하고, 식량 및 기타 물자의 배급에서도 제외되는 등 불이익이 많아 창씨를 하지 않으면 이 땅에 살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광복
1945년 8월 15일 온 나라에 해방의 만세 소리가 울려퍼졌다. 일본 천황은 이날 떨리는 목소리로 원자폭탄의 위력에 놀라움을 나타내면서 포츠담선언에서 밝힌 연합군측의 무조건적인 항복 요구를 수락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항복소식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서대문 형무소의 옥문도 활짝 열려 그 동안 갇혀 있던 독립 투사들이 모두 풀려났다. 한편 해방된 나라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여운형이 중심이 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도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있어 기쁨을 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