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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1년 6월 신임총독에 우가키 임명
2. 농촌경제 '파탄' 위기
3. 1936년 8월, '강경파'미나미, 조선총독으로 임명

4. 1936년 8월 황국신민화 정책 본격화-각급 학교에 신사참배 강요

5. 1937년, 미나미 총독 5대 시정방침 발표

6. 1939년 10월 1일, 총족부 '국민징용령' 실시

 
1931년 6월 일제는 사이토총독을 퇴임시키고 육군대장 출신의 우가키 가즈시게를 신임 총독에 임명했다. 우가키는 일찍부터 만몽적극정책을 주장해온 군부 강경파로 알려졌는데 최근의 미묘한 만주정세에 비춰 머지않아 만주와 관련해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무성하다. 또 그는 날로 격화되고 있는 농촌사회의 모순에 대해서도 일정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바야흐로 일제침략으로 인한 대내외적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그가 어떤 정책으로 이에 대처해나갈지 두고 볼 일이다.
농촌의 살림살이가 가난의 극에 달해 파탄지경에 이른 가운데 사회주의사상의 영향을 받은 농민조합운동이 북쪽지방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일제 경찰당국은 이에 대해 폭압적인 탄압을 자행해 사회정세가 날로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실정이다. 농촌살림의 궁핍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특히 최근의 세계 대공황 여파에 따른 농업공황으로 쌀값이 폭락하고 있어 심각한 실정이다. 여기에 총독부의 재정수탈마저 가중되어 대부분의 농가는 빚더미에 올라있다. 이런 경제위기를 반영하여 사회주의사상에 기반을 둔 적색농민조합의 지도하에 각지에서 농민들의 폭동적인 항쟁이 연이어 터지고 있어 사회 전체가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1936년 8월 우가키 총독이 사임하고 미나미 지로가 새 총독으로 임명됐다 그는 만주사변 때 육군대신으로 대륙 침략을 주도했고, 괴뢰정권 만주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관동군 사령관을 역임한 자로 군 내부에서 강경파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이 총독이 되면서 한국도 전쟁에 대비하는 체제로 전환하는 암울한 상황이 초래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의 취임사에는 일본, 한국, 만주의 일체감을 강조함으로써 일본제국의 대륙 팽창에 한국인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표명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각급 학교에 신사참배 강요
총독부는 '신사제도의 개정에 관한 규칙' 을 발표하고 전국에 걸쳐 신사를 증설하면서 각급 학교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있어 학생들은 물론 각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자신이 일본국민임을 확실히 인식하라는 '국체명징' 운동의 일환으로서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로 보는 기독교계를 비롯하여 각계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총독부가 이렇게 황국신민화 정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는 것은 만주사변, 상해사변 등을 일으키면서 대륙 진출을 본격화 하는 가운데 후방을 안정시킬 필요성이 제고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37년 미나미총독은 식민지 지배를 안정시키고, 장차 있을 서구 여러 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국체명징, 만선일여, 교학진작, 농공병진, 서정쇄신이라는 5대 정강을 발표하였다. 시정방침은 모두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고 정신적으로는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 민족을 말살하는 황민화정책에 집중되고 있어 앞으로 일체의 민족운동이 발붙일 틈을 잃어갈 전망이다.

징병 당해 시가행진을 하고 있는 모습

총독부가 '국민징용령'을 선포하고 실시하고 있다. '국민징용령' 이란 탄광이나 철도, 도로, 군사 시설 등을 건설하는 데에 우리 국민을 모집하여 보낸다는 법률이다. 그러나 말이 모집이지 실제로는 강제로 동원하여 일을 시키는 법률이나 다름없다 벌써 수많은 사람이 강제로 끌려가고 있다. 어른뿐 아니라 어린 학생들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은 군사 시설 공사장으로 보내진다고 한다. 앞으로 이런 강제 동원이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