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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1년 5월 15일 신간회 마침내 해체
2. 을밀대 지붕서 '고공투쟁' -여공 강주룡씨
3. 1931년 6월 농촌에 '계몽운동' 바람
4. 1933년 10월 한글, 이렇게 쓰면 된다 -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 발표
5.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천황에 폭탄
6. '1936년 안익태 애국가 작곡
7. 1937년 사이비 종교 '백백교'의 처참한 종말
8.1944년 8월 '정신대' 20만 동원
 
1931년 5월 15일 신간회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 된 전체회의를 개최하여 전격적인 해소를 결의함으로써 창립 이후 5년 동안의 활동을 마침내 마감하였다. 신간회의 해소는 민중대회사건 이후 집행부의 우경화에 반발한 신간회 내 사회주의 세력의 주장에 따른 것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는 이번 신간회의 해소가 1930년대 들어 일본의 지배적책이 강압적으로 바뀐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신간회의 해산으로 인해 향후 민족운동전선에서 민족주의계열과 사회주의계열 간의 대립이 한층 심화될 전망이다.
을밀대 농성중인 강주룡씨
한 고무 공장 여성 노동자가 을밀대의 지붕에서 임금을 내리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여성은 평양의 평원 고무 농장에서 일하던 강주룡이다. 사건이 있기 전 공장측은 임금을 내린다고 발표했다. 이에 여성 노동자들은 이것을 받아들이면 다른 공장에서도 앞 다투어 임금을 내릴 것으로 보고 곧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그러자 경찰이 들어와 이들을 모두 공장 밖으로 끌어냈던 것. 이에 절망한 강주룡은 그날 밤 을밀대에서 자살할 것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냥 죽으면 그 이유를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여 아침이 되어 사람들이 모여들자 억울한 사연을 호소한 것이다. 을밀대는 높이가 11m나 되는 축대 위에 세워진 누각인데, 누각 높이만도 5m나 되어 올라가기 매우 높은 곳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했으면 저런 곳에 올라갔겠느냐-며 노동자들의 현실에 공감하고 있다.

신문사들이 앞 다투어 농민 계몽 운동에 나서고 있다. 신문사들은 방학을 맞아 고향에 가는 학생들에게 농촌에서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일 것을 권하고 있다. 또 뜻이 있는 학생들을 모아서 농촌으로 보내고 있는데 학습 교재 등도 무료로 대준다고 한다. 벌써 많은 학생이 이 운동에 참여할 뜻을 전해 오고 있고 농민들의 반응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생계가 절박한 상황에서 문맹 퇴치, 생활 개선활동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 의문스러워 하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브나로드 운동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 발표
우리말인 한글을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바른 것인가를 내용으로 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맞춤법통일안' 을 만들어 발표했다. '한글맞춤법통일안' 에는 띄어쓰기와 올바른 맞춤법 등 기본적인 내용이 모두 들어 있다. 여지껏 들쭉날쭉 쓰이던 말을 '서울에 사는 중류층이 사용하는 말' 로 통일해 표준어로 삼기로 했다. '조선어학회'는 1921년에 '조선어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민간 단체로 1931년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해 왔다. 이들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우리 말인 한글을 지키고 널리 알리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해 왔었다.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이 도쿄에서 일본천황에게 폭탄을 던졌지만 안타깝게도 실패로 돌아갔다. 이봉창은 한인애국단 단원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일본은 경악하고 있는 반면 한국인들의 독립의지는 만천하에 떨쳐졌다.
: 미니상식 / 한인애국단이란?

한인애국단은 1931년 말 상해임정 김구주석이 만든 비밀테러조직이다. 김구주석은 만주사변 이후 시시각각 조여들어오는 일본에 타격을 가하려면 특단의 방법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고 이 조직을 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장은 김구주석이고 간부는 이유필, 이수봉, 안공근 등이 맡고 이으며 행동대원으로는 이봉창, 윤봉길, 이덕주 등 80여 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행동에 들어가기에 아서 "나는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돼 적을 살해하기로 맹세하나이다" 라는 선서문을 낭독하는데 이는 마치 유서와 같은 것이어서 그 분위기가 매우 엄숙하다고 한다.
안익태
베를린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지휘자 겸 작곡가 안익태가 애국가에 곡을 붙였다. 안익태는 이 곡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대한인국민회로 보내 출판한 상태이고 임시정부에도 보내 사용허가를 받을 예정이다. 지금까지 애국가는 가사만 우리의 것이었을 뿐 곡은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랭사인'에 맞추어 불러왔기 때문에 뜻 있는 사람들은 항상 이를 민망하게 생각해왔다. 그럼에도 시절이 하도 어려워 여기에까지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안익태가 곡을 만들어 애국가의 체면을 살리게 됐다.
사이비 종교 '백백교'의 정체가 드러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백백교 교단 관계자들은 교리를 의심하는 신도들을 차례로 살해해 암매장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백백교는 지난 1923년부터 순진한 농민들을 대상으로 포교해 왔다. 실제 교주처럼 교단을 관리해 온 '전용해'는 자신을 천부님의 아들이라고 받들게 하며 신도들의 재산을 뜯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신도들의 재산을 빼앗은 다음 은밀한 장소로 이들을 데리고 가서 살해한 후 땅속에 묻어 버렸다. 이 일로 교단 관계자들은 대부분 사형과 수십년, 혹은 수년 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도망친 전용해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여자 정신대'라는 미명 아래, 속아서 끌려간 여성들이 중국에 도착 직후, 검진을 받으러 가고 있다.
일제는 여자정신대 근로령을 공포하고 수십만에 달하는 12~40세의 미혼여성을 차출하여 일본과 한국 내의 군수공장으로 동원하였다. 이 중 일부는 남방과 중국 전선에 위안부로 끌려가고 있다고 한다. 그 숫자는 정확하게 파악되고 있지 않지만 20만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군 위안부들은 1937년 난징 대학살에서 벌인 일본군의 짐승 같은 강간행위가 중국인들의 심한 반일감정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성적인 위안시설을 정비하면서 확대되었다고 한다. 이들 한국인 위안부들은 꽃다운 나이에 몸과 마음을 짓밟히다가 대부분 전장에서 죽어가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