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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31년 5월 전세계 '금융공황' 강타
2. "대공황 극복 지름길을 찾아라"
3. 1937년 7월 28일 중.일 전쟁 발발
4. 1939년 9월 1일 독일, 폴란드 침공…2차세계대전 발발
5. 1940년 9월 15일 임정, 독립군 창설'
6. 1941년 12월 8일, 미.일 '태평양전쟁' 발발
7. 1942년 6월 일, 미드웨이 해전 대패
 
1931년 5월 오스트리아 최대의 은행 크레디트 안슈탈트가 돌연 휴업을 선포하고 문을 닫은 것을 시발로 은행 휴업사태가 유럽 각국으로 파급돼 국제적인 금융공황이 발생했다. 독일에서는 전 은행이 휴업에 들어간 상태고, 영국은 금 수출을 금지하는 한편 파운드의 평가절하를 단행해 영국 주도의 금본위제가 파탄을 맞고 있다. 독일은 1차세계대전 전후보상을 짋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전후부흥을 위해 막대한 단기성 외채를 쓴 것을 원인으로 금융공황의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영국 역시 단기자금을 많이 쓰다가 대공황의 타격을 받았다. 미국도 상황이 나은 것은 아니다. 미국의 광공업 생산지수는 1929년 110에서 1931년에는 75로 급락하고 있고 그 하락속도는 더욱 가파라질 전망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많은 은행이 파산한 상태이고 달러의 금 태환 정지도 곧 있을 것으로 예측돼 세계경제가 총체적 파탄상을 보이고 있다.
대공황의 충격파가 서서히 가시면서 각국이 공황 탈출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드어 이 대응책들이 확연하게 두 갈래 성향으로 나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의 경우는 재정수단을 활용한 '경제판 다시 짜기' 의 성향을 보이고 있고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파시즘 체제를 바탕으로 군부가 전면에 나서 경제외적 강제력에 의존해 경제를 강제적으로 재편하는 것이 다른 하나다. 이는 자본주의 발달수준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되는데 주로 후발자본주의국가들이 '파시즘형' 을 택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과 영국 등 선발자본주의국가들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대해 불만을 가져왔다. 이에 따라 1차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베르사유 평화체제가 붕괴위기를 맞고 있어 국제정세는 암운이 감돌고 있다.
1937년 7월 28일 일본군이 중국의 북경과 톈진에 대한 전면공격을 개시해 양국 간에 전면전이 발생했다. 일본군은 화북지방에 진주한 관동군 이외에 본국에서 3개 사단을 증파, 중국본토를 쾌속으로 남진하며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중국의 국민당군은 장비와 화력에 절대 우세한 일본군에 밀려 계속 패주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침략을 개시한 이래 항일연합전선을 모색해온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은 이미 1930년에 붕괴된 국공합작을 최근 다시 복구한 상태여서 일본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장기항전이 예상되고 있다. 이번 중.일 전쟁 역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일본의 위험한 승부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이번 중. 일 전쟁을 좌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 또다시 세계대전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되고 있다.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이에 맞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2차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독일군은 육군 기갑사단과 공군 전투기를 동원, 전격적으로 폴란드를 침공해 폴란드측은 전투기가 채 뜨기도 전에 괴멸적 타격을 받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하고 전투에 나서고 있지만 폴란드를 원상회복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독일은 폴란드에 그치지 않고 네덜란드, 벨기에, 핀란드 등으로도 진격할 태세로 보여 1차세계대전 때와 비슷하게 전세계 국가들이 전쟁에 연루될 것으로 보인다.

임시정부는 충칭에서 "우리의 분산된 역량을 집중하여 전면적 조국광복전쟁을 전개하기 위해" 광복군을 창설했다. 임정은 광복군 창설에 즈음한 '한국광복군선언문'을 통해 "한국 광복군은 중화민국 국민과 합작하여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기 위하여 우군의 일원으로 항전을 계속한다" 고 밝히고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우리의 전투력을 강화한다"고 창군 목적을 밝혔다.

중경 '가능빈관'에서 개최된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 전례

기습 전 진주만의 모습
일본 전투기와 폭격기 183대가 휴일을 즐기던 하와이 진주만의 미 태평양 함대 기지를 선전포고 없이 급습하여 미국과 일본간에 전면전이 발생했다. 일본은 이날부터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로 진격, 순식간에 동아시아와 태평양 일대를 점령했다. 12월 8일 새벽 일본 군함과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폭격기 180여대가 1시간씩 두 차례에 걸쳐 진주만 기지를 폭격해 군함 24척을 격침시키고 전투기 300여 대를 격파했으며 2천 400여명의 전사자를 발생시켰다. 불의의 일격을 받은 미국의 루스벨트대통령은 '일본은 비겁하다. 반드시 결판을 내겠다' 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일본군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하여 진주만 공격 이후 승승장구하던 전세가 이 전투를 고비로 꺾이기 시작했다. 일본은 진주만 공격으로 큰 손상을 입은 미국의 태평양함대를 재차 공격함으로써 미군의 반격의지를 봉쇄하려는 목표로 태평양 한가운데의 미드웨이 기지를 공격했으나 일본 해군의 암호를 해독하고 반만의 준비를 마친 미군의 기습으로 패주했다. 이번 전투에서 일본이 입은 전력 손실은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